
리카르도에게는 의외로 로맨틱한 구석이 있었다. 연애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주제에, 특별한 날이면 연인을 위해 응당 이벤트를 열어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벤트! 이 얼마나 사람을 고심하게 만드는 단어란 말인가. 서진이라면 '보스가 해주시는 거라면 뭐든 좋아요.' '보스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다 좋아요.' 따위의 말들을 할 테지만, 그리고 이것에는 한 치의 거짓도 섞이지 않았을 테지만 리카르도의 생각은 달랐다. '다 좋아도' 서진은 개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야 했다. 누구 애인인데. 바람 빠지듯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당장 뛰쳐나가 그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을 것 같아 애써 펜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다시 생각해보자. 먼저 서진은 남의 이목이 모이는 곳을 내켜하지 않았다. 본인부터 시선 받기를 부담스러워했으며, 최근의 일들을 생각해보면 저를 남들에게 내보이는 것 또한 싫어하는 것 같았다. 참으로 귀여운 독점욕이었으나 이를 자극하거나 시험해볼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로맨틱한 이벤트가 열릴 장소는 당연히 리카르도, 본인의 집이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동거를 하는 커플에게는 맹점이 있었다. 자택은 서진과 자신의 공동 공간이다. 출근도, 퇴근도 대개 함께였으며 휴일에는 붙어있다시피 했다.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함께 일어나고,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면 어김없이 따라오는 서진의 눈을 피해 집에서 일을 꾸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스케줄러에 적은 '자택' 글자에 가로줄을 그었다.
그렇다면······ 사택인가? 서진과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잘 들르지 않는 공간이었으니 얼추 조건이 들어맞는다. 집이 여러 채라 다행이군. 코를 찡긋거리며 제집 구조를 대충 떠올린 리카르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일주일. 틈틈이 들락거리며 미리 집을 꾸며두고 4월 13일 밤이 되면 서진을 사택으로 이끈다. 자정이 되면 집 안으로 들이고 가장 먼저 그의 생일을 축하한다. 4월 14일이 되는 순간 음악이 켜져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날은 서진을 밖에 내보내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곱씹은 리카르도가 당사자의 동의는 구하지 않은 채 멋대로 휴가 신청서를 휘갈겼다.
4월 14일, 휴가 신청서. 리카르도 A. 칼리스토.
4월 14일, 휴가 신청서. 한서진.
*
D-1.
그 날따라 외출이 잦은 저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없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지 계급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편한 일이었다. 그래, 아무도 관심 갖지 말라고. 표정 관리할 자신 없으니.
해가 다 진 후, 리카르도는 사택 안을 휘 둘러보며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 선물에는 이상이 없는지, 방금 공수해 온 수국 꽃다발은 어느 곳 하나 어그러짐이 없는지, 편지는 제대로 썼는지, 집 꾸밈에 모자람은 없는지, 자정에 전원이 켜지도록 맞춰 둔 턴테이블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전부.
"좋아."
준비는 완벽했다. 이 나이 먹고 풍선은 조금 유치한가 싶었지만 주렁주렁 매단 것도 아니고 제 눈에는 제법 예쁘게 보였으니 괜찮지 않을까. 좋아해주면 좋겠는데. 답지 않게 잠시 망설인 리카르도는 이내 고개를 털고 사택을 나섰다. 이벤트를 한다고 생일 전날에 야근을 시킨 못된 상사가 되긴 하였으나, 이제 용서를 구하고 일더미에서 연인을 건져내러 갈 시간이었다.